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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밴드 음악에 발걸음이 멈춰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고등학교 시절 처음 들었던 '행진' 한 곡에 그렇게 멈춰 섰습니다. 들국화는 198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판도를 바꿔놓은 밴드로, 대한민국 명반 순위 1, 2위를 다툴 만큼 음악인들 사이에서 압도적인 평가를 받는 팀입니다. 그 시절 왜 이 음악이 사람들을 붙잡았는지, 저의 경험을 빌려 풀어보겠습니다.

천재 밴드 들국화, 왜 한국의 비틀즈라고 부르는가
들국화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 가장 먼저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냥 옛날 밴드 아닌가요?" 저도 처음엔 비슷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LP판을 구해 1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을 때,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들국화의 주요 멤버는 키보드 허성욱, 베이스 최성원, 드럼 주찬권, 보컬 전인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보통 밴드라 하면 한두 명의 핵심 인물이 이끌어 나가는 경우가 많지만, 들국화는 멤버 전원이 독자적으로 곡을 쓰고 해석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팀이었습니다. 음악계에서 "개인이 아닌 팀 전원이 천재"라는 평가가 나온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음악인들 사이에서 이들을 비틀즈(The Beatles)에 비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비틀즈란 1960년대 영국에서 결성되어 팝과 록의 경계를 허문 4인조 밴드로, 멤버 간 창작 역량의 균형과 갈등 구조까지 닮았다는 점에서 들국화와 자주 대비됩니다. 실제로 전인권과 최성원의 관계는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처럼 항상 팽팽한 긴장 관계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드러머 주찬권이 링고 스타처럼 이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1집 앨범 재킷도 비틀즈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멤버 4명의 얼굴을 분할해 배치한 디자인이 비틀즈 초기 앨범의 구성과 닮아 있습니다. 저는 그 LP 재킷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 한국 음반 디자인 중에서 단연 세련된 편이었습니다.
들국화 1집이 특별한 이유
저는 집에 오디오가 생기고 나서 바로 들국화 1집 LP를 구매했습니다. A면의 '그것만이 내 세상'과 '행진'은 당연히 많이 들었지만, 사실 제가 더 자주 바늘을 올렸던 건 B면의 '사랑일 뿐이야'였습니다. 최성원의 서정적인 미성(美聲)으로 시작하다가 후반부에 전인권이 받아치는 후렴 부분은, 그 호소력과 밀도가 A면 수록곡들과는 또 다른 압권이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군부 통치 시절 문화 검열로 인해 모든 음반에 건전가요(健全歌謠) 1곡을 의무적으로 수록해야 하는 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건전가요란 정부가 지정한 사회적·도덕적 메시지를 담은 곡으로, 당시 음반 제작의 필수 요건이었습니다. 들국화는 이 규정에 따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직접 녹음해 수록했는데, 저항 정신으로 이름 높은 밴드가 직접 그 곡을 부른다는 설정이 묘하게 역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 전인권 — 보컬. '그것만이 내 세상', '행진' 등 대표곡 담당
- 최성원 — 베이스. '매일 그대와', '제주도 푸른 밤' 원곡자
- 주찬권 — 드럼. 멤버 간 갈등 중재 역할, 안타깝게 일찍 세상을 떠남
- 허성욱 — 키보드. 30대에 요절하여 팀의 아쉬움을 남긴 핵심 멤버
나무위키는 들국화를 두고 "한국 록이 무엇을, 어떻게 노래해야 하는지를 정의한 그룹"이라고 정리합니다(출처: 나무위키 — 들국화(밴드)). 포크 음악(Folk Music)이라는 기반 위에 록의 구조를 얹고, 민주화 운동 시기의 저항 정신까지 녹여낸 완전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닙니다. 여기서 포크 음악이란 어쿠스틱 악기 중심의 서정적 음악 형식으로, 1970년대 한국에서 대학가와 청년 문화의 상징이었습니다.
추억 들국화, 그 앨범에서 묻혀버린 명곡들
들국화의 공식 정규 앨범은 1집과 2집, 딱 두 장입니다. 그런데 들국화를 좀 안다는 분들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 언급하는 앨범이 있습니다. 바로 전인권과 허성욱이 함께 낸 '추억 들국화'입니다. 공식 명칭은 아니지만 들국화 팬들 사이에서 사실상 3집으로 여겨지는 앨범이며, 다른 멤버들도 세션으로 참여했습니다.
이 앨범이 나온 배경에는 비극이 있습니다. 갈등을 조율하던 주찬권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전인권과 최성원 사이의 중재자가 사라졌고, 키보드의 허성욱마저 30대에 요절했습니다. 그 공백 속에서 나온 앨범이라 들을 때마다 여러 감정이 교차합니다.
'사랑한 후에'와 전인권의 해석력
이 앨범에서 가장 큰 히트를 기록한 곡은 '사랑한 후에'입니다. 이 곡은 앨 스튜어트(Al Stewart)의 'The Palace of Versailles'를 한국어로 리메이크한 곡으로, 앨범에 원곡 출처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리메이크(Remake)란 기존에 발표된 곡을 새로운 편곡이나 가사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전인권이 어머니를 여의고 철길을 거닐며 가사를 썼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가사를 보면 "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 편에 / 빨간 석양이 물들어 가면 / 놀던 아이들은 아무 걱정 없이 / 집으로 하나 둘씩 돌아가는 데 / 나는 왜 여기 서 있나"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제가 처음 이 가사를 읽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순한 실연의 노래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슬픔과 상실을 담은 깊은 자화상 같은 곡이었습니다.
많은 후배 가수들이 이 곡을 리메이크했지만, 음악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전인권의 원본 해석을 넘어선 버전이 아직 없다는 평가가 주를 이룹니다. 제 경험상 그 이유가 단순히 목소리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곡이 나온 시간의 무게, 상실의 무게가 목소리에 실려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묻혀버린 '머리에 꽃을'과 방송 활동 거부
'추억 들국화' 앨범에는 민중가요(民衆歌謠)로 자리 잡은 '사노라면'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민중가요란 사회적 저항이나 노동운동, 민주화 운동의 메시지를 담은 노래로, 1980년대 한국 사회에서 대중과 함께 불린 저항의 노래입니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곡이 있습니다. 바로 '머리에 꽃을'입니다.
이 곡은 스콧 맥켄지(Scott McKenzie)의 'San Francisco'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곡으로, 히피(Hippie) 문화의 자유 정신과 반전(反戰) 메시지를 한국적 감성으로 담아낸 명곡입니다. 히피 문화란 1960~70년대 서구에서 기성 권위에 반발하며 평화와 자유를 추구했던 청년 문화 운동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랑한 후에'가 워낙 큰 히트를 치는 바람에 이 곡은 대중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들국화는 음반을 내고도 방송 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 팀으로 유명합니다(출처: 유튜브 — 들국화 관련 영상). 제가 그 시절을 돌아보면, 라디오와 음악 다방에서 먼저 들었던 기억이 전부입니다. TV에서 들국화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음악 다방이란 당시 DJ가 음반을 틀어주는 카페 형태의 공간으로, 1980년대 청년 문화의 핵심 공간이었습니다. 방송 무대 없이 음악 다방과 LP로만 퍼져나간 음악이 이렇게까지 사람들 마음에 남아 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놀랍습니다.
'행진'의 가사를 떠올리면 지금도 그 시절의 감각이 되살아납니다.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 행진 행진 행진 하는거야."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청소년기에 이 가사가 왜 그렇게 가슴에 꽂혔는지, 어른이 된 지금에야 더 선명하게 알 것 같습니다. 어둡지 않은 척 버텨내야 했던 시절을 정확히 짚어준 노래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들국화 앨범은 총 몇 장인가요?
A. 공식 정규 앨범은 1집과 2집 두 장입니다. 다만 전인권과 허성욱이 함께 발표한 '추억 들국화'가 사실상 3집으로 여겨지며, 다른 멤버들도 세션으로 참여한 앨범입니다. 팬들 사이에서는 이 앨범까지 포함해 들국화의 디스코그래피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Q. '사랑한 후에'는 표절 논란이 있는 곡인가요?
A. 표절이 아닙니다. '사랑한 후에'는 앨 스튜어트(Al Stewart)의 'The Palace of Versailles'를 원곡으로 한 리메이크 곡으로, 앨범에 출처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걱정 말아요 그대'가 표절 논란을 겪었던 것과는 다른 경우입니다. 원곡 출처를 투명하게 밝힌 공식 리메이크입니다.
Q. 들국화가 방송 활동을 거의 안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정확한 이유가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만, 들국화는 상업적 방송 활동보다 음악 자체에 집중하는 성향이 강했던 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덕분에 좋은 곡들이 대중에게 충분히 알려지지 못한 측면이 있고, 지금도 '아는 사람만 아는 명반'으로 남아 있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Q. 들국화 1집에서 꼭 들어야 할 곡이 있다면?
A. '그것만이 내 세상'과 '행진'이 가장 유명하지만, B면의 '사랑일 뿐이야'도 꼭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최성원의 미성과 전인권의 후렴이 대비를 이루는 곡으로, A면 대표곡들과는 또 다른 감동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한 번 듣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글을 마치며
들국화의 음악을 처음 접하려는 분이라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1집을 LP 순서대로, 즉 A면부터 B면까지 그냥 한 번 다 들어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요즘엔 스트리밍으로도 들을 수 있으니, 귀찮은 장벽이 없습니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 멈추지 말고 B면까지 가보시면, 이 팀이 왜 한국 록의 기준점으로 불리는지 느껴지실 겁니다.
그리고 1집이 익숙해졌다면 '추억 들국화'도 꼭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사랑한 후에'만이 아니라 '머리에 꽃을'까지 들으면, 이 팀이 단순한 록 밴드가 아니라 한 시대의 정서를 통째로 담아낸 집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전인권은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 중입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